안녕하세요 – 고도성장기 초기 일본인의 삶 엿보기

안녕하세요 – 고도성장기 초기 일본인의 삶 엿보기

 

※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초등학생 형제 미노루(시타라 코우지 분)와 이사무(시마즈 마사히코 분)는 집에 TV가 없어 유흥업에 종사하는 마루야마 부부의 집에 놀러 가 TV를 시청합니다. 하지만 미노루 형제의 어머니 타미코(미야케 쿠니코 분)는 못마땅해해 마루야마 부부의 집에 가지 못하게 막습니다. 미노루 형제는 침묵으로 일관하며 TV를 사달라고 조릅니다.

1959년 일본, 컬러 영상으로 엿보기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1959년 작 ‘안녕하세요’는 일본 고도성장기 초기 도쿄의 신흥주택가를 배경으로 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포착한 군상 드라마입니다. 카메라가 정지된 가운데 등장인물들의 대화 위주로 서사를 전개하는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정적인 연출이 고수됩니다.

도쿄 이야기’를 비롯한 오즈 야스지로 감독의 연출작 다수가 흑백 영화이지만 ‘안녕하세요’는 컬러 영화라는 점에서 이채롭습니다. 당대 일본의 풍속도를 컬러 영상으로 엿볼 수 있어 흥미롭습니다.

다닥다닥 붙어있는 옆집을 노크도 하지 않은 채 문부터 열어젖히고 들어가는 행동이 자연스러워 사생활을 강조하는 21세기와는 차이가 크게 체감됩니다. 외판원이 칼을 들고 들어가 위협적으로 강매하는 구시대적 행태는 우스우면서도 어처구니없습니다. 외판원을 압도하는 할머니 미츠에(미요시 에이코 분)의 존재는 ‘카리스마 넘치는 여장부 할머니’가 여전히 자주 등장하는 일본 영상물답습니다.

이웃 중에서 TV, 그것도 흑백 TV를 보유한 집이 한 집에 불과해 아이들이 몰려가 스모 중계를 시청하는 모습은 1970년대 한국을 연상시키기도 합니다. ‘한국이 일본에 20년 뒤졌고 중국이 한국에 20년 뒤졌다’는 과거 속설을 떠올리게 합니다. TV를 사달라고 조르는 형제의 떼쓰기는 중반부터 클라이맥스까지 서사를 이끌어가는 원동력이 됩니다.

일본인 특유 화법의 의미는?

제목 ‘안녕하세요(お早よう)’는 일본어의 아침 인사입니다. 미노루 형제가 TV를 사달라고 부모에 조르며 침묵할 때 어른들은 ‘안녕하세요’와 같은 쓸데없는 대화를 주고받기만 한다는 대사와 연관됩니다.

하지만 미노루 형제에 영어를 가르치는 청년 헤이치로(사다 케이지 분)의 입을 빌려 ‘안녕하세요’와 같은 상투적인 인사는 ‘일상의 윤활유’와 같은 것이라며 긍정적으로 바라봅니다. 헤이치로는 성인 캐릭터 중에서 미노루 형제의 마음을 가장 잘 헤아리며 부드럽게 대하고 대화하는 바람직한 인물입니다. 미노루 형제가 잠시 행방불명되었을 때도 역에 나가 집으로 데려옵니다.

오즈 야스지로의 영화는 가벼운 인사말이나 상대의 말에 맞장구치기만 해 무의미한 듯한 대사가 많은 편입니다. 무라카미 하루키도 수필에서 이를 지적한 바 있습니다. 상대의 의견에 반대하거나 본심을 드러내는 직설 화법을 꺼리는 일본인의 특성을 반영한 것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안녕하세요’가 일본인의 삶을 마냥 긍정적으로 바라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동네 사람들은 ‘뒷담화’를 즐기며 서로를 쉽게 의심합니다. 이를 못 견딘 마루야마 부부는 이사해 동네를 떠납니다. 사람 사는 모습은 동네는 물론이고 나라와 무관하게 다들 엇비슷합니다.

도쿄 이야기 - 담담하게 그려지는 가족 해체

http://twitter.com/tominodije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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